머리말 '언론사'에서 '대중매체사'로
언론사 연구를 둘러싼 문제들 = 5
'총체성'을 겨냥한 '큰 그림' 그리기 = 8
상호관계에 주목하는 '대중매체사' = 9
『카멜레온과 하이에나』 = 10
'정치권력'에서 '언론권력'으로 = 11
땅에 발을 딛는 이론을 위하여 = 13
제1장 개화기의 언론 1(1883∼1896)
'늑대떼에게 포위된 소년' = 26
박규수·오경석·유대치 = 28
급진개화파/온건개화파/위정척사파 = 30
임오군란과 고종의 언론관 = 32
박영효와 유길준의 『한성순보』창간시도 = 34
『한성순보』창간의 정치적 역학관계 = 37
『한성순보』창간 = 40
『한성순보』의 뉴스원(源)과 세계관 = 42
'3일천하'로 끝난 갑신정변 = 45
급진개화파의 민심(民心) 오판 = 47
갑신정변에 대한 온건개화파의 시각 = 49
『한성순보』의 폐간 = 51
전신매체의 도입 = 54
『한성주보』의 창간 = 56
『한성주보』의 폐간과 의의 = 59
동학혁명-청일전쟁-갑오경장 = 61
갑오경장의 내용 = 65
'3국간섭'과 정동파의 부상 = 66
민비의 박영효 축출 = 68
을미사변과 대원군의 역할 = 70
을미개혁과 아관파천 = 71
전신과 우편 = 74
차라리 가난이 다행이었던 민중의 삶 = 75
제2장 개화기의 언론 2(1896∼1898)
『한성신보』의 활동 = 80
유길준의 활약 = 82
윤치호의 귀국 = 83
『독립신문』의 창간 = 86
『독립신문』의 발행 방식과 창간정신 = 88
『독립신문』은 '최초의 민간지'인가? = 91
서재필 자신의 회고 = 92
정동파의 역할 = 95
서재필에게 가해진 탄압 = 97
독립협회의 활동 = 99
만민공동회와 독립협회의 해산 = 101
윤치호와 이완용 = 103
『독립신문』의 특성과 영향력 = 105
『독립신문』의 광고활동 = 106
의병을 비도(匪徒)로 부른『독립신문』= 108
필립 제이슨(Philip Jaisohn)으로 행세한 서재필 = 110
왜 서재필의 명의로 등록했나? = 112
서재필은 숭미사대주의자였나? = 113
윤치호, 정진석, 김민환의 평가 = 115
『조선일보』의 서재필 이용 = 118
『그리스도신문』과 사진의 복제 = 119
제3장 개화기의 언론 3(1898∼1910)
『협성회회보』와 『매일신문』 = 124
『제국신문』『황성신문』『대한신보』『시사총보』『상무총보』 = 126
『제국신문』과 이승만의 언론 활동 = 128
『황성신문』과 민족사학자들의 언론 활동 = 131
영화의 도입 = 134
『대한일보』와 『대동신보』의 창간 = 136
『대한매일신보』의 창간 = 137
『大韓每日申報』로의 전환 = 140
러일전쟁과 을사보호조약 = 141
장지연의 '시일야방성대곡' = 143
『국민신보』와 일진회 = 146
『중앙신보』와 『만세보』 = 148
『경성일보』, 『경향신문』, 『대한신문』 = 150
『대한매일신보』의 반일(反日) = 152
『대한매일신보』의 외세관(外勢觀)과 의병관(義兵觀) = 154
고종 퇴위와 광무신문지법 = 156
『대한매일신보』와 국채보상운동 = 159
국채보상운동의 좌절 = 161
베델의 마지막 활동과 사망 = 163
『황성신문』과 『대한매일신보』에 대한 북한의 시각 = 165
의병활동과 통신시설 파괴 = 166
『소년』과 『대한민보』 = 168
『경남일보』와 『대동일보』 = 170
일제의 강점과 신문들의 폐간 = 172
친일파를 양산한 흥아론(興亞論) = 175
제4장 일제하의 언론 1 (1910∼1920)
일제의 농민착취와 '무단정치' = 178
윤치호의 유교 비판과 친일논리 = 180
'무단(武斷)정치시대'의 신문 = 182
『매일신보』의 활동 = 183
3·1운동과 지하신문의 활약 = 185
일제의 '문화통치'로의 전환 = 188
'화류계의 친일화' 공작과 민중의 삶 = 190
일제가 신문 발행을 허가한 이유 = 191
최현철의 문제 제기 = 193
제5장 일제하의 언론 2(1920∼1929)
『조선일보』와『동아일보』의 창간 = 198
『시사신문』의 창간 = 200
『동아일보』를 허가한 일제의 속셈 = 201
『조선일보』의 『동아일보』에 대한 콤플렉스 = 203
『동아일보』의 독주 = 205
잡지의 창간과 신문의 성격변화 = 207
일제의 친일파 지식인 육성 = 209
1924년 『조선일보』의 변화 = 211
1920년대의 사회주의 열풍 = 213
수십명이『동아일보』에서 『조선일보』로 = 214
『시대일보』와 『중외일보』 = 216
이상협의 활약 = 217
최남선의 몰락 = 220
무명회와 철필구락부 = 222
1925년의 전조선 기자대회 = 224
기자단 결성과 신간회 조직 = 226
최초의 여기자, 이각경 = 227
사진기자들의 활약 = 228
경성방송국의 개국 = 230
'청취허가장'과 '비빔밥 방송' = 232
연쇄극의 탄생 = 233
무성영화와 변사의 인기 = 235
나운규의『아리랑』과 영화의 발전 = 237
일제의 영화 통제 = 239
영화가 '현대성의 형성'에 미친 영향 = 241
대중가요의 유행 = 242
매춘업, 네온사인, 백화점의 등장 = 244
유행, 여성의 상품화, 손목시계의 등장 = 245
제6장 일제하의 언론 3 (1929∼1945)
6·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운동 = 250
지하신문과 활약 = 251
탄압을 피해가기 위한 문화사업과 보도주의(報道主義) = 253
만보산 사건과『조선일보』 = 254
조선·동아의 한글보급운동 = 257
『조선일보』와 『동아일보』의 싸움 = 259
방응모의 공격적 경영 전략 = 261
'기생관광'까지 동원한 이전투구(泥田鬪狗) = 262
비행기까지 동원된 속보 경쟁 = 264
신문에 대한 사회적 인식 = 265
신문의 문학 지배 = 268
일장기 말소 사건 = 270
조선·동아의 일제에 대한 충성 = 271
『조선』『동아』의 폐간과『조광』의 활동 = 273
『매일신보』와 『경성일보』 = 275
이중방송 실시와 '단파방송밀청사건' = 278
영화의 두 가지 역할 = 281
대중가요와 '댄스홀' 탄원 = 283
윤치호의 친일논리 구조 = 286
제7장 미 군정하의 언론(1945∼1948)
한국을 적대시한 맥아더 포고문 = 292
『매일신보』『조선인민보』『해방일보』 = 294
『자유신문』과 『중앙신문』 = 296
'언론의 둑은 터졌다' = 297
'38선의 밀수품'이된 책과 용지난 = 298
'문화의 둑'도 터졌다 = 300
미군정의 언론 및 인민공화국 모독 = 302
『서울신문』『조선일보』『동아일보』 = 303
『동아일보』와『조선일보』의 노선 = 304
신문의 정파성과 신문사습격 사태 = 306
미군정의 언론통제와 좌익지 탄압 = 309
『경향신문』의 창간 = 312
1947년의 언론 상황 = 314
'미 군정의 언론 대학살' = 316
통신사의 출현 = 317
전파주권의 획득 = 318
'정당방송'의 활성화 = 319
5·10단독 총선거와 『동아일보』의 활약 = 322
북한의 단전(斷電)과 '배전실황중계방송' = 323
제8장 이승만 정권하의 언론(1948∼1960)
좌익지의 소멸, 우익지의 번성 = 326
한국전쟁과 신문들의 시련 = 327
'전쟁의 최초의 희생자는 진실' = 328
'반공(反共)이 아닌, 반한(反韓)을 위한 전쟁' = 330
한국전쟁 보도의 어려움 = 331
미국TV의 한국전쟁보도 = 332
민주주의 사망, 신문의 몰락 = 334
한국전쟁이 남긴 상처 = 335
『한국일보』의 창간 = 336
기독교방송의 개국 = 339
'자유부인' 사건 = 340
박인수, 이강석 사건 = 342
이승만 정권의 '소박한' 언론탄압 = 343
'동아일보를 보면 재미없다' = 345
언론단체의 결성과 국가보안법 개정 = 347
한국 최초의 TV방송 = 349
경영난으로 무너진 HLKZ-TV = 351
DBC-TV와 AFKN-TV = 353
유선방송 지원과 부산문화방송 개국 = 354
아나운서의 인기와 기자·PD의 어려움 = 355
이승만 정권의『경향신문』폐간 = 357
신문의 정론성과 상업성 = 359
『사상계』의 함석헌과 장준하 = 360
책 월부판매와 '베스트셀러'의 등장 = 363
4·19혁명과 언론 = 365
제9장 장면 정권하의 언론(1960∼1961)
허정과 도내각의 자유주의적 언론정책 = 368
'신문망국론'의 등장 = 369
신문은 이권이요 권력의 원천 = 371
독자들의 '실력행사' = 373
장면의 '자유주의'와 '친미주의' = 374
장면 정권의 민심(民心)관리 실패 = 375
장면 정권의 『민족일보』탄압 = 377
제10장 박정희 정권하의 언론 1(1961∼1967)
제일 먼저 KBS부터 점령한 박정희 = 380
『민족일보』폐간과 조용수 사형 = 381
언론의 쿠데타 지지 = 383
박정희의 언론에 대한 혐오감 = 385
군사정권의 새로운 언론정책 = 387
KBS-TV의 개국 = 389
'주여! 상업방송을 금지시켜 주시옵소서' = 391
군사정권의 문화방송 강탈 = 393
10·15대선과 박정희의 사상 문제 = 396
한일회담과 6·3사태 = 398
언론윤리위원회법 파동 = 401
『주간한국』의 창간 = 404
『세대』필화사건 = 405
DTV와 부산 지역국 개국 = 407
라디오의 경쟁과 FM개국 = 410
『신아일보』『중앙일보』의 창간 = 411
『경향신문』의 경매 처분 = 412
'재벌언론'『중앙일보』의 활동 = 414
삼성 비호에 동원된 중앙매스컴 = 415
언론테러와 정권 홍보 = 417
제11장 박정희 정권하의 언론 2(1967∼1972)
'신문은 편집인 손에서 떠났다' = 422
『사상계』와 장준하의 시련 = 423
1·21사태와 통일혁명당 사건 = 425
'신민당 소명서'사건 = 427
『선데이서울』등 주간지의 번성 = 429
『한국일보』장기영의 활약 = 430
코리아나호텔과 맞바꾼『조선일보』의 3선 개헌 캠페인 = 432
언론의 타락과 대학생들의 항의 = 434
신문기업의 번영, 신문기자의 고통 = 435
영화의 몰락을 예고한 TV의 성장 = 437
TV에 가해진 정치적 입김 = 438
TV 광고의 발전 = 440
아폴로 11호『아씨』, 『여로』 = 441
경부고속도로와 지역불균등 발전 = 442
전태일의 분신 자살 = 444
김지하의 『오적』과 『씨알의 소리』창간 = 446
서울대 학생들의 '언론화형선언문' = 447
『동아일보』기자들의 '언론자유수호선언' = 449
4·27대선과 지역분열주의 = 450
『다리』사건과 서승·서준식 형제 사건 = 453
박정희의 '신파극'과 혹독한 고문 = 455
프레스카드제와 언론통폐합 = 456
제12장 박정희 정권하의 언론 3(1972∼1979)
새마을운동과 '7·4남북공동성명' = 460
'10월 유신'이라는 사기극 = 461
김일성을 닮아간 박정희 = 463
언론의 유신 홍보와 『조선일보』의 코리아나호텔 완공 = 465
『조선일보』의 광신적 유신 찬향 = 467
한국방송공사의 탄생 = 469
MBC의 분양 = 471
언론인의 정관계 진출 = 472
『별들의 고향』과 '호스테스 문학' = 475
김대중 납치 사건과 긴급조치 1, 2호 = 476
'민청학련 사건'과 '인혁단 사건' = 478
'박정희 사진을 이가 아프도록 꼭꼭 씹었다' = 479
'온 세상이 히스테리현상을 보이고 있었다' = 482
겉 다르고 속 다른 방송정책 = 484
10·24 자유언론실천선언 = 486
『동아일보』광고 탄압 사건 = 487
『조선일보』에서의 기자 탄압 = 490
'자유언론선언'을 상술로 이용한『조선일보』 = 491
거리로 내쫓긴 145명의 기자 = 492
언론사 '기수 인맥'의 명암 = 494
긴급조치9호와 김영삼의 변절 = 495
은폐된 '명동사건'과 무하마드 알리 = 497
보도지침과 '오일쇼크' = 499
해직 기자들의 출판 활동과 『뿌리깊은 나무』의 창간 = 500
1백만부 돌파를 선언한『중앙일보』 = 502
『중앙일보』와 『동아일보』의 전쟁 = 503
동아투위와 조선투위의 성명 = 506
10·26사건과 유신의 증언 = 508
제13장 전두환 정권하의 언론(1979∼1987)
5·18광주 학살과 K공작 = 514
언론의 5·18보도 = 515
국보위 기관지를 자처한『조선일보』 = 517
고문으로 조작해낸 '김대중 내란음모사건' = 519
언론인 해직과 이진희의 아첨 = 520
언론통폐합과 언론기본법 제정 = 522
컬러TV 방송 실시 = 525
미스 유니버스, 국풍81, 통금해제, 프로야구 = 528
TV의 '땡전뉴스'와 '또한뉴스' = 530
공익자금조성과 언론 포섭 = 532
한수산 필화사건과 박정희 비판 = 533
『이산가족을 찾습니다』 = 534
미 문화원 점거와 TV시청료 거부운동 = 535
TV가 '앵벌이'로 나선 '평화의 댐' 사건 = 537
『말』의 '보도지침' 폭로 = 538
김주언, 김태흥, 신흥범의 활약 = 540
권인숙-박종철-이한열 = 542
『조선일보』의 아첨이 만들어낸 4·13호헌 조치 = 545
5공의 가장 큰 수혜자는『조선일보』 = 546
제14장 노태우 정권하의 언론(1987∼1993)
『조선일보』의 왜곡 보도 = 550
언론자유 확대와 양적 팽창 = 553
언론사 내부 민주화와『한겨레신문』의 창간 = 555
언론청문회와 언론인 개별접촉 보고서 = 556
언노련 탄생과 언론민주화운동 = 557
KBS 4월 투쟁 = 558
서울올림픽과 신문의 증면 경쟁 = 560
재벌의 신문 소유와 민영방송 탄생 = 561
'김중배 선언'과 '국가안보 상업주의' = 562
부패에 찌든 언론의 생존 감각 = 563
'YS장학생'과 『조선일보』의 '대통령 만들기' = 564
제15장 김영삼 정권하의 언론(1993∼1998)
여론의 중심이 되지 않으면 못 참는 김영삼 = 568
김영삼 정권의 언론개혁 프로젝트 = 569
'낮의 대통령'을 관리한 '밤의 대통령' = 571
ABC, 케이블TV, 지역민방 = 572
'언론재벌'과 '재벌언론'의 전쟁 = 573
'언론계 전두환 장학생' = 575
『독립신문』창간 100돌과 언론개혁10대 과제 = 578
IMF사태 주범이 저지른 언권선거 = 580
『조선일보』주필 김대중의 도덕적 파탄 = 581
언론권력의 도전 = 583
'서바이벌 게임'에 들어선 언론 = 585
신문을 많이 팔수록 손해본다 = 587
미쳐 돌아간 윤전기 도입 경쟁 = 588
우려되는 일부 언론의 여론 독점 = 591
제16장 김대중 정권하의 언론(1998∼2000)
『조선일보』와 『중앙일보』의 권력 창출 시도 = 594
언론의 '신 DJ죽이기' = 596
지역감정 선동에 혈안이 된 언론 = 598
김대중 정권의 구태의연한 언론관 = 600
언론개혁시민연대의 출범 = 603
언론의 주식 투자와 보도의 악용 = 605
여전한 촌지와 향응 = 608
통합 방송법의 제정 = 610
영화와 비디오 = 613
인터넷 매체의 성장 = 615
1999년 언론통계 = 617
4·13총선과 지역주의 = 619
맺는말 권력변환
개화기의 언론 = 623
일제 치하와 미 군정 치하의 언론 = 624
이승만 정권에서 박정희 정권까지 = 626
전두환 정권에서 노태우 정권까지 = 628
정치권력을 통제하는 언론권력 = 629
언론은 이제 더 이상 카멜레온과 하이에나가 아니다 = 631
언론개혁은 가능한가? = 633
한국 사회의 에피스테메 지체현상 = 635
민주주의 운영 방식의 문제다 = 637
· · · · · · (
收起)